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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 이지수 번역가

아오야마 2020. 3. 11. 22:29

 

 

 

   이 글은 책의 리뷰가 맞지만...본의 아니게 저의 여행기 까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바쁘신 분들은 뒷 부분부터 읽기를 권해 드립니다. (정말 길어요...)

 

 

 

예전에 읽은 책은... 많지도 적지도 않지만 건너뛰는 수밖에 없고 아무튼 첫 책은

이지수 번역가(이제는 작가인가)의 "아무튼 , 하루키"

오래전에 임경선 작가가 이런 비슷한 류의 책을 내서 신나게 본 기억이 난다.

제목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었던 것 같다.

하루키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이 많이 있어서 무척 재밌게 봤었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류의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본에는 팬들이 쓴 하루키의 작품 해설서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나온다는데

번역이 되지 않는 이상. 일본어를 모르는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듯.

 

  이번 여행을 끝내고 이런 류의 책에 다시 관심이 생겨 국내에

출판된 일본의 유명 평론가들이 쓴 책을 몇 권 주문한 상태이다.

이건 어느 정도 내용이 있으니 번역이 됐겠지 하는 기대가 있다.

여기서 내가 깜짝 놀란 건 그저 하루키라고 검색어를 쳤을 뿐인데 그의

저서외에도 국내 팬들이 출간한 책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사실.

여행 부터 시작해서 술과 음악등 책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로 책을 만들어 낸 걸 보면

확실히 하루키의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팬으로 하여금 이 정도의 행동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아직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그저 그의 신간 소식을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그에 관해 써 내려간 다른 책들을 찾아다닐 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아무튼 하루키` 를 겸한 여행기

9박 10일의 여행을 다녀왔는데 도쿄는 처음이라 초반에는 놀이공원에

처음 가본 아이처럼 넋을 잃고 돌아다녔지만, 슬슬 시간이 흐르자 혼자하는 여행의 단점이 드러났다.

이국 땅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외로움이라고 해야하나.

하물며 그렇게 차가 돌아 다녀도 경적소리 한 번 울리지 않는 도쿄는

내가 살던 곳에 비하면 너무나 적막감이 감도는 곳이었다.

아니 될 소리지만 문득 고성방가가 그리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루를 완전히 쉬기로 하고 찾아간 곳이 결국엔 서점...

일단 서점은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 마음이 편하니까.

다만 그 효력이 일본에서도 이어질지는 의문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고서점이 즐비한 진보쵸 사거리...

안내 지도를 보면 서점들이 수 백 개도 넘게 있는 것 같은데

구석구석 숨어 있는 건 찾지도 못할 것 같아서. 결국 대로변에 위치한 큰 가게들만 돌아 다녔다.

잘 나눠진 구획에 질서 정연하게 모여 있는 책방들을 보면 꼭 현대식 서점같아 보이기도 한데.

어쨌든 헌책을 취급하고 있으니.. 헌책방 거리는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릴적 부산에서 자란 내게 헌책방이라 하면

이미 그 전부터 굳게 박혀버린 기억같은게 있어서.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보수동 헌책방 거리의 미로속을 탐험하는 듯 굽이굽이 휘어지는 그런 골목이며

근처의 음식점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와 헌 책의 냄새가 뒤섞인 특유의 정취? 곰팡이였을까?

내 오랜 기억을 자극할 만한 요소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아무런 책이나 골라서 맘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봐도 될 것 같은 그런 편안함도..

일본은 어디든 뭔가 지켜야 할게 많아 보여 신경이 쓰인다고 해야하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거기서 맘 편하게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이 문장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단어는 단연코 맘 편히 인 것 같은데.

그런 시절이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물론 하루키 처럼 도스토예프스키나 발자크를 읽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때 나는 엄연히 사춘기였고 이제 갓 수염이 자라나는 중학생이었으니

대한 해협을 건너와 은밀한 곳에 감춰져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서점 아저씨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나를 부르는 손짓.

그리고 내 손으로 건네지는 잡지에 용돈을 쏟아 붓기에 바빴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 답게 교복 안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포켓북은 숨기기에도 그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딱히 번역도 필요 없는 책이었다.

아마도 그 때 대작가와 일반인을 가르는 신의 시험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범상한 것에 유혹을 느끼느냐 마느냐 그런 차이?

내가 그때 읽은 거라면 마이클 클레이튼 이나 로빈 쿡 이런 류 였던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최소한 스티븐 킹이라도 읽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 뿐.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정상이고. 중학생 때 부터 고베의 헌책방에서

지금도 내가 이해하기 힘든 저런 작가들의 책을 읽어대는 사람이 비정상 같다.

 

그로부터 20년 하고도 더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다시 헌책방에 왔는데

결국 나는 책에 인쇄된 그림이나 보고 있을 뿐 여전히 까막눈이었다.

그래도 재미난 삽화들이 들어간 책이 많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특히나 옛날 게이샤의 사진을 담은 책들이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나중에는 그것만 훑어 보게 되었다.

이런거 보면 나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성장이란 걸 전혀 못한 걸지도.

(변명을 하나 하자면 그 책들은 가격이 눈이 튀어 나올 정도여서..그래서 단지 그 기회가 아쉬웠는지도)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찾아간 곳이 `진보쵸 "책거리"라는 서점,

한국말로 된 간판이 보여서 가봤는데 알고보니 한국책을 파는 서점이었다.

물론 일하는 사람도 한국인? 인가? 어쨌든 여직원은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일본에 가서 만난 한국 책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거기서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책 '아무튼 하루키'

저자에 대해서는 기억이 있는데 작년인가 유명 출판사의

편집자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던 중 이분이 출연한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특히나 하루키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관심있게 봤는데

책에 적힌 작가이름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펼쳐보았다.

그때 옆에 다가온 여직원이 친절하게 저자 소개를 해주셨고

`사노 요코`란 이름이 나오자 내 귀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내 입도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는게 뭐라고?, 죽는게 뭐라고? 어쩌고 저쩌고`

 

그 말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 입에서 튀어 나오자 여직원분은 무척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우기 쉬운 제목을 지어주신 `사노 요코`씨에게 살짝 감사했다..

지금와서 하는 이야긴데 실은 나는 그 책 읽어 본 적도 없었다.(아는 척 해서 죄송합니다)

그저 제목만 외우고 있을 뿐..(이건 그냥 외워지니까)

딱히 아는 척을 할려고 했던 건 아니고 그저 오랜만에 한국말이 하고 싶어서 였을까...

아니면 처음보는 일본 분이 맞장구 쳐주는데 넋이 나갔는지도. 확실히 그건 중독성이 있다.

(참고로 나는 칭찬에 약하다...)

그분의 표정이나 제스처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러고 보면 잘못은 처음부터 그 분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사노 요코 책 재밌어요? 읽어 보신 분 댓글 좀 부탁드려요.)​

 

그렇게 친분을 다진 우리는 생각 외로 긴 시간을 책에 대해 토론했다.(김지영..김지영....김지영...)

손님이 오고 그 분이 커피를 끓이러 아주 긴 시간 자리를 비운 틈을 못 견디고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

책이 재미가 있어서 인지. 아니면 내 눈이 활자가 고픈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앉자마자 한 번에 모두 읽어 버렸다.(완독)

여기서 부터는 여러 줄 감상평

이번 일본 여행을 다니는 동안 내가 인상을 쓴 적은 있어도 웃은 기억은 단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물론 멋진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본 적은 있겠지만 거기에 웃음이 섞여들 리는 없으니까.

그러고 보면 웃음이라는 건 애초에 혼자서는 불가능한 건가.

반드시 말이 통하는 어떤 사람이 곁에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되었는데.

(혼자서 웃고 다니면 그건 좀 이상하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웃음이,,,그것도 아주 크게 터져나왔다. 

``다시 읽어 보니까 스미레가 말~~이 너무 많아``

(​저자가 어떤 뉘앙스로 말했을지 궁금하다.아무리 봐도 화내는 느낌인데)

 

책에 수록된 이 대사는 그 후로 여행이 끝날때까지 내 머릿속을 떠다녔는데.

왜냐하면 처음에는 그냥 웃어 넘겼다가. 나중이 되자 진짜 스미레가 말이 많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뒤로는 당연히 빨리 집에 가서 확인해 보고 싶어질 정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스미레가 어땠었지?. 걔가 그렇게 말이 많았나? 내 기억으론 책 중간에 사라져서 나오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난 애초에 저자가 이런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문이었다.(이건 정말 창의적인 불만이다)

 (여담이지만 집에 와서 확인한 결과 내 기억과 견주어..스미레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스미레는 여전히 새벽에 전화를 걸어 `기호와 상징`의 차이에 대해 묻는 정도의

  적당히 참아 줄만한 피곤한 여자인 채로 잘 지내고 있었다.

  세상에는 새벽에 전화해서 `지금 내가 어디야`를 물어보는 여자도 있다)

 

무슨 연유로 저자가 스미레를 다시 보게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무슨 계기가 있겠지.. 

다만 여자가 보는 여자는 다를 수 있으니까..

사회생활을 통해 보고 들은 경험을 토대로 한다면.. 여자가 특별히 여자에게 가혹하게 군다거나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 안 보이는 데서 하겠지?)

​다만 삼자인 내가 보고 느낀 감정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가차없다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던지는 말에서 확실히 온도차가 느껴진다. 

 

  나는 아마도 소설을 읽기 시작한 시기가 너무 늦어서 그런지 몰라도.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해 인상이 변한 적 은 없는 것 같은데.....뭐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면 알 수가 없다.

노년이 되어서 어딘지 모를 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읽으며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릴지도.

 

"하루키군은 말이야 젊은 친구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

 살아보면 인생은 별 것 없는데 말이지...

그리고 옛날부터 해주고 싶었던 말인데 땅콩 껍질은 웬만하면 재떨이에 같이 넣지 말게나.

그러면 금방 차서 넘친단 말일세.

골치 아픈 인간이 골치 아픈 일을 더 만들 필요는 없지않나"

 

이딴 소리나 꺼내놓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것 말고 기억 나는 대목은

 

첫 째는 저자가 심신이 지쳐버린 어느 날 문득 하루키의 책과 노트를 들고

맥도날드에 앉아 문장을 번역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거기서 지잉~지잉~하고 느낌이 왔다고 한다

뭐 요새는 워낙 고 카페인을 즐기는 시대라 시도 때도 없이 지잉지잉 한다는 사람이

주위에 하도 많아서 대단한 증상은 아닌 것 같다만..

 

다만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해버렸는데. 문득 하루키의 잡문집이었나.

바로 그 오렌지색 책의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책의 첫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때가 되면 최면술사는 손뼉을 짝짝 쳐서 잠든 고양이를 깨운다` 는 그 부분이이었다.

물론 내가 그 대목에서 왜 그 생각을 떠올렸는지 그 연관성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지만..

다만 당시에 저자가 받았다는 그 느낌에 대해서는 살짝 궁금해진다..

 

 단지 그날 오랜 만에 하는 번역에 혼을 빼앗겨서 끼니를 거르고 맥카페만 줄기차게 들이켜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면 전부터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루키처럼 어떤 계시를 받은 걸까?

모처럼 쉬는 휴일.. 잠에서 문득 깨어나 가장 마음에 드는 하루키의 책 한 권과 노트를 챙긴 다음

역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 앉아 번역을 한다는 것...그건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던 인간에게는 

이례적인 일이니까.

​ 이것 외에 기억나는 나머지 하나는 적기가 좀 망설여지는데 그건 작가의 연애담이었던 것 같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정신과 의사가 말해주는 염소목에 걸린 시계 이야기를 인용해서

자신의 연애에 사용한 적이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건 기존에 내가 이해하고 있던 것을 몇 단계 뛰어 넘은 해석이라..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뭐 그 이야기를 어떻게 각색하고 이용했는지는 저자만이 알고 있겠지만.. 

내가 봐도 이분은 발상이 아주 기발한 면이 있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이 외에도 저자의 재미난 사연이 많이 있었지만 내 머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니까.

(현실에서는 그게 왜 안 될까?)

누군가의 말대로 책은 얼어붙은 얼음을 깨뜨리는 도끼라고 해야하나..

그 부분들이 내 머리의 얼어붙은 곳을 내려쳤다고 보면 될 것 같다.(발상의 전환)

그리고 깨진 얼음조각들은 여행을 하는 내내 의문 부호와 함께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래도 그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나는 다시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으니

내게는 도쿄에서 잠시 머물다간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또 한편으로는 그 책이 남은 내 여행의 궤도를 살짝 수정해 버렸으니

읽기를 잘 한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살 수 밖에 없는 책..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느 정도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책..

(특히 하루키책에 나오는 구절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장면은...코와~이)

​집에 와서 다시 천천히 읽어 보고 든 느낌은..

당장 작가로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풍부한 어휘와 표현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역시 중학생때부터 하루키를 읽은 사람은 다르구나) 

 

``아무튼,도쿄에서 처음으로 완독한 책 "아무튼,하루키"

 

 

## 다 쓰고 나니까 든 생각인데..

   책에서 저자분이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서 애정을 듬뿍 담은

   신랄한 말투로 채찍질을 해 두셨는데

   그 책은 내가 봐도 하루키가 지금까지 쓴 책 중에서...

   여자가 보기에는 제일 재미 없을 것 같은 혹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만 전에 없던 재미난 요소들이 있었다는 측면에서 한 번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무척 긴 이야기니까..아주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