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입이 짧습니다.
남들은 제 식성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흔히들 입이 짧다고 하죠.
저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남자 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상관없다만,
어릴적에는 그것 때문에 수없이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제 식성이 이상하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의구심이 든 것은 초등학생 때부터였지만, 식탁에 올라오는 대로
먹어야 하는 시기였고 , 저 또한 음식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같은 것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일으켜 본적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 들어 성장기가 시작되고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무턱대고 사먹다가 수도 없이 장염에 걸려 고생을 했습니다.
그 덕에 저는 늘 한약을 달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일은 어린 제게는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약을 피하기 위해 음식들을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식탁위에 올라오는 붉은색 음식은 가급적이면 손도 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후부터 병원에 가는 일은 사라졌고 저는 제가 한 선택에 대해서
무척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어른들의 잔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말들은 대개는 바람처럼 가볍게 지나가지만
어떤 때는 비수처럼 꽃혀서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저 때문에 평화로운 아침식사자리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명절이 끝나고 가족끼리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 대신 나물이 듬뿍 든 비빔밥을 먹습니다.
각자 자기 취향대로 비빔밥을 만들고 나면 이제 다른 사람앞에 놓인
그릇을 보며 한 마디씩 품평회를 시작합니다.
다른 가족들의 그릇에는 마티스의 그림에나 나올 것 같은
붉은색 광기가 흐릅니다. 하지만 제 그릇은 투명한 물잔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 마냥 초라해 보입니다.
그날 저는 `너의 성격이 그런 건 음식을 싱겁게 먹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나이순대로 돌아가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는 그 말에 침울해졌지만 그래도 가족이니까 참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다릅니다.
그건 중세의 마녀사냥과도 무척 흡사합니다.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친척들이 모두 모여 근교의 불고기집에 갑니다
저는 보통 고기를 적당히 먹고나면 다른 반찬을 집어먹던지 아니면 냉면을 기다리
며 가져간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집안 어른 중에 유독 한 명이 저를 못마땅해 합니다.
'너는 왜 다른 애들처럼 저렇게 못 먹니?
책은 집에서 실컷 보면 되자나.
이런 비싼데까지 데려왔으면 부모님 생각해서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우리가 어릴때는.......'
라는 말을 듣고 지금까지 쌓였던 화가 터져버렸습니다.
'나는 이제 배가 충분히 부르단 말이야. 그리고 고기보다 다른 반찬이 더 맛있어.
지금까지 계속 참아왔어. 나도 중학생인데 이제 먹는 건 내 맘대로 하게 해달란 말이야'
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이제 자랄만큼 자랐어.
친척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크단 말이야.
그러니까 굳이 많이 먹어야 할 필요도 없어"
라는 말을 하고 나자 이제는 주위 어른들이 모두 다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때부터 이 가게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고기가 1인분에 얼마인지. 그러니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모두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니 시키는대로 잠자코 먹어라.
먹지 않으면 다시는 여기에 데려오지 않겠다.
필요없는데..
그럴거면 횟집을 가던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가 바뀌면
기억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매번 똑같이 반복됩니다.
고기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피가 흐르는 소의 생간이 나옵니다.
그러면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저를 쳐다 봅니다.
기억도 못하는데 어른들 말로는 제가 빈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건 늘 제 차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억지로 그것들을
입안으로 삼켜야 했습니다.
분별없는 누군가의 성급한 문제 제기로 인해
저에게
낙인이 새겨지면
그 동안 별 생각없던 주위 사람들도 그 사실을 문제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김치에서 고춧가루를 걷어 낸다거나 라면에 스프를
반만 넣는다던가 하는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어떤 음식이라도 주는대로 먹어야 하는게 당연한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른들이 화내는 이유도 이해하지만 화낼 수 있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보충
그 후로도 가족 모임은 이어졌고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은 친척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부페에 가면 김밥을 가장 즐겨 먹습니다.
그 날도 성격이 여전히 그대로인 한 명이 주위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말에 상처를 받아 침울해졌습니다.
"쟤는 어쩜 여기서 제일 싼 것만 골라서 먹니"
김밥을 먹는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왜 다른 사람이 먹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