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야마 2020. 4. 14. 15:50

 봄이 훌쩍 다가왔네요.

 

 제가 있는 곳은 아직까지는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만

낮이 되면 가끔 여름이 온 것마냥 더운 날도 있습니다.

저 멀리에 있는 산의 정상에는 여전히 하얀 눈이 쌓여 있는데

그 아래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주위 모습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계절이 어디쯤 왔나 가늠하곤 했습니다.

검은색 옷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하고 밝은 색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봄이 왔구나하고 생각하곤 했는데

올해는 그런 걸 가늠하게 해줄 척도가 없네요.

주위에는 돌아다니는 차들 빼고는 사람의 모습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올 3월에 일본에 다녀오고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 갈 여행에 대한 기억들을 남겨두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다녀온지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그 기억들은 퇴색해 가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여전히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치 먼 과거의 일이라도 되어 버린 듯 당시만큼 선명하지가 않습니다.

9박 10일의 여정에는 즐거웠던 일도 있었고 불쾌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제 스스로 기대를 한 부분도 있었으니

많은 감정들이 제 안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겁니다. 

하지만 기억이란 건 조금 이상한 측면이 있나 봅니다.

직접 눈으로 봤던 순간들 그리고 거기서 제가 했던 생각들은 여전히 뚜렸하게 남아있는데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무척 빠르게 사라져 가는 기분이네요.

 

 예를 들면 제가 도착했을 당시에 그 곳의 날씨같은 것이겠지요.

여기와는 사뭇 다른 성질을 가진 공기와 그 곳의 분위기 

그 안에서 저절로 느껴야 했던 것들.

제 머리속에는 들어 있었겠지만 기억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그것들은 

이제야 겨우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느낌입니다.

단순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은 기억으로 남겨지는데도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파주를 다녀왔습니다. 

한 달에 두어 번은 가는데 파주와 일산의 끝자락쯤에 걸쳐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거기서 만난 지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은 겨울에도 그렇게 건조하지 않고

습한 느낌이 꽤 익숙하다고 제가 말했더니 재미난 답변이 들려왔습니다.

그건 아마도 도쿄와 부산이 기후가 비슷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쨋건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 부산이었으니까요.

그 곳은 서울보다는 확실히 아래에 위치해 있거든요. 그리고 바다도 있구요.

 

  안 간지 꽤 되었더만 서울에 올라오고 부터

가끔 부산에 내려가면 묘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톨게이트 위에 세워진 간판을 보자마자

차의 창문을 내리면 밀려 들어오는 공기속에서 끈적한 소금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요. 

흔히 말하는 바다냄새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제가 작년에 이곳에 내려왔을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7-8월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날아오는 바닷 바람에는 그런 특유의 향취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언제나 차가운 수온을 유지하는 동해와 달리 

남해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요.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에는 숨이 막힐듯이 괴롭겠다만 대신

겨울에는 또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 피부속의 수분을 모두 앗아가려는 듯 그렇게 건조하면서

날카로운 바람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도쿄에서 저를 에워싸고 있던 그 공기가

제 머릿 속의 오랜 기억을 자극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쿄는 돌아다니기에 안심이 될 지언정 마음이 썩 편했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딱히 휴양을 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구요.

그런데도 제 몸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음은 꽤 황량한데도 매일 아침마다 운동을 했을 정도로 컨디션은 무척 좋았거든요.

익숙하다는 것,그것도 결국은 제가 소유한 하나의 기억이 분명할 테니까요.

 

  최근에 저는 오랜만에 안경을 바꾸었구요.

`헤밍웨이 인 하바나`란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은 대 여섯권을 샀는데 잘 읽어지지가 않아서 방치중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챈들러 그리고 류의 소설들입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지우고 망설이고 뭐 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기까지는 무척 편하게 썼던 것 같은데요.

물론 지금 이 글도 커피를 마셔가며 아주 편한 마음으로 쓰고 있답니다. 

다만 다른 건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겨 버렸거든요.

 

얼마전에 글을 하나 올리고 나니 어느 순간 부터 한 사람이 생각이 났습니다.

결국 그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후에 살아온 일들에 대해서 전해 듣게 되고

또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건 또 제 과거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거기에 이렇다할 나쁜 점은 전혀 없습니다만

제가 지금껏 지향해 왔던것과는 다른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여전히 반가운 마음은 있다만

거기에는 딱히 해야할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가 않는 것 같아서

마치 그런 걸 일부러 확인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 거 보면 우리가 나이를 먹은 것 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다자키 쓰쿠루` 처럼 그 동안 만나왔던 사람을 찾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구요.

실은 이곳에 내려오고 나서 아주 우연한 계기로, 대신에 자발적으로

제가 무척 보고 싶어했던 사람을 한 번 만났거든요.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이곳에 찾아왔던 건 아닐까 싶어

했을 정도로...

그리고 나서는 과거에 알았던 누군가의 지금 모습을 안다는 것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저장되어 있던 것과 현실은 많이 다르니까요.

물론 제가 느낀 건 나쁜 쪽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앞으로 어떤 호기심들은 그냥 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불쑥 또 이런 일이 생겨나 버렸습니다. 

 

사람이 바쁘지 않다는 것, 혼자 있다는 것에는 이런 단점도 존재하나 봅니다.

이번에는 딱히 그럴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이 블로그를 그저 개인적인 생활의 기록 정도로 활용한다면 좋겠다만 그건  

제 입장에서 별로 재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기억에 남아 있는 그런 일들을 끄집어 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답니다.

그런 글은 쓰다 보면  제가 놓치고 있던 사실들도 알게 되어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덕에 오랜만에 연락을 하고 그 후의 일들도 전해듣게 되었으니 일석이조기는 한데

마음이 영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글과 생각 그리고 행동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거 보면 글을 쓴다는 행위에는 제가 모르는 부분들도 분명 존재 하는것도 같습니다.

 

저는 꿈을 꿀 때마다 제 머리에 달려 있는 뇌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곤 합니다. 

뜬금없는 장면들을 떠올리고 나면 당최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가 없거든요.

그것과 유사하게 글도 쓰고 나면 그 자체로 뇌에 어떤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저처럼 무언가에 대해 쓰다보니 그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거나 하는 그런 것 말이지요.

TV를 보다보니 무언가가 먹고 싶어졌다 이런 종류의 일과도 비슷해 보이기는 한데.

글이라는 건 기억속에 꼭꼭 감춰져 있던 무언가를 찾아내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 곳에서의 만남도 어쩌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반드시 있거든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란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무언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한다는 것. 끊임없이 떠올린 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글을 1000개쯤 써놓고 한다면 떳떳하기라도 할텐데...

그게 아니라서 무척 쑥스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꾸준히 글을 써내는

하루키라는 작가가 정말 위대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다만 그 사람에게도 웃으며 풀어 낼 수 있는 일들이 있을테고

결국 소설의 형식으로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일들도 존재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는 않습니다. 

 

  하루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저는 그 동안 그 사람의 책을 꽤 본 편에 속할 겁니다. 물론 제가 얼마나 이해하고 아는지는

측정할 길은 없습니다. 그런 건 시험을 쳐 본다고 아는 일은 아닐테니까요. 

다만 일본에 다녀오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거기서 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어렴풋이

찾아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건 제가 살면서 미처 모르고 있던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숱하게 책을 읽으면서도 제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주제에 저는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고 다녔으니  

저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질 정도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무척 길어질테니 한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제가 이 블로그에 하루키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쓰고나자

여러 의문점이 들었고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다녀오고 나서의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제야 제가 그 사람의 소설들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처음으로 명확하게 말할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건 뜻밖의 수확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가끔 과거에 제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가끔 나이가 들어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도 있구요. 

저는 그 동안 제가 왜 그 사람의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됐거든요.

그런데 하루키의 책들과 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이제야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은지도 

모르겠네요. 저로서는 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걸 안다고 해서 당장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만

최소한 방향만큼은 바뀔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아무튼 저는 최근 들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행도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글을 써 본 것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던 것도 뒷맛이 영 개운하지는 않아도

잘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결코 후회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하루키의 책과 저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버렸으니

아마도 당분간은 굴튀김에 대해서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은 시작부터 일들이 많습니다. 

흉흉하고 슬픈 일들로 시작한 한 해이지만 마지막에는 그만큼 더 좋은 일들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래야 어쩔 수 없이 사라져야 했던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있을테니까요.

 

다들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