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번역가 후기 모음

눈부신 햇살이 모든 별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윤성원-

아오야마 2020. 3. 23. 19:41

 

 

 

 

 

  굳이 여기에 이 글들을 옮겨 적는 이유는?

음악도 그렇지만..모아두면 꺼내보기 편하니까.

하루키 표현으로 하면 자기요양을 위한 사소한 시도?

아니면 바흐의 평균율과 같은 효과를 지닌 글?

 

'태엽 감는 새'을 읽고 나면 나는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든다.

가령 책의 첫 시작 부분에서처럼 낯선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그런 대화가 시작된다면 아마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스파게티를 끓이던 가스렌지 불부터 껏을 것이다. 

면이 불어 터지던지 말든지, 아바도가 도둑까치의 서곡을 절정으로 끌고

가던지, 아니면 주저 앉던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눈 앞에서 새로운 오페라가 열리고 있는데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떻게 사느냐의 차이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역자 후기를 읽고나면

나는 언제쯤 세상을 이렇게 있는 그대로, 곧이 곧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이다. 

내 생각들이 우후죽순 솟아나는 못이라고 한다면 이 글은 그것들을 내려치는

망치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참고로 위의 그림속 인물은 이 글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번역자 사진을 구할 수 없어서 올렸습니다.
(사람 머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상상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림 속 인물은 다들 아는 무라사키 시키부(성격이.......) 인데 왜 나왔는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기왕 나왔으니

윤성원님 사진은 이것으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저작권이 문제가 되면 바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분이 싫어하셔도 바로 내리겠습니다.

이 블로그는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될 소지는 아예 없으며

나중이 되면 그저 여행의 기억을 남길 정도로만 활용될 가능성이 높으니

양해 바랍니다)

 

 

   

 

 

         거대한 세계 속의 나, 그 무력감과 고독감 

 

얼핏 보면 이 작품에는 흐름이라는 게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소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의 나열과 추상적인 비유들이

때로는 독자들을 곤혹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편 소설을 읽고 난 후에는 분명 어떤 종류의 가슴 떨리는

감동이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태엽 감는 새`라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창조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접근하고 있다. 태엽 

감는 새를 통해 그는 우리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을 그려주며, 그들의 활약을 

이야기해 주고자 한다. 

우리 현대인은 거대한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무력감과 고독감 

따위를 나날이 절감하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커다란

조직 안에 자신이 존재하고,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어떠한 명령과 

규율에 의하여 자신이 움직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세계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고,

또한 그들이 이 사회를 존속시켜 나간다는 망상 아닌 망상에까지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더욱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어쩌면 나는 이 세계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진정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지탱해 나가는 것은

우리 같은 그저 평범한 인간들임을 이 소설은 일깨워 준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오늘날의 사회를 혼란과 어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추상적이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상하의 움직임 그안에 있는 불합리성과 부조리,

그로 인한 절망 내지는 불안감 ,분노, 또는 인간의 거역할 수 없는 유한성 ,

그러한 우리들의 고뇌까지도 대변해 주고자 한다.

한편으론, 죽음과 삶을 오가는 깊디깊은 우물 바닥,

그리고 전쟁이라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우리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역설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랑으로 찾은,잃어버렸던 나

 

이 작품에서도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인간에 대한 포용력을 엿볼 수 있다.

그다지 대단치 않은 상황들, 뚜렷한 근거조차 없어 보이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망설임과 고뇌를 부드럽게 이끌어 내고, 그것들을 결코 몰아세우거나

추궁하지 않는다. 인간이므로 가질 수 있는 나약함,

자신이라는 존재의 불확실함을 감싸 주고 위로해 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는 여러 가지를 고발하고 있다.

전후 작가인 그는 노몬한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여

과거 일본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전쟁의

참상과 무의미함을 역설한다. 또한 그로 인해 인간이 멸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을 젊은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준다.

 지극히 이중 구조인 오늘의 현실 ,세계가 다양화될수록 더욱 근시안이 되어가는

오늘날의 우리,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한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상실해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무감각해져서도 안된다고 

상실을 인정해서는 더욱 안되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우리가 혈안이 되어 추구하는 것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이 거대한 세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카다 도루`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휴식을 안겨 주는 인물이었다,

남보다 뛰어나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강박 관념과 그런 현실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현대인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오카다 도루 같은 사람이 대다수다.

눈에 띄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저버리지 않고 지켜 보며 이 시점에도 삶을 사랑하고자 애쓰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고 나서 나는 살아간다는 의미를 다른 방향에서 조명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평범한 나의 이웃들을 가슴을 열고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나`라는 평범한 존재도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눈부신 햇살이 모든 별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윤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