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번역가 후기 모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윤성원-

아오야마 2020. 4. 1. 10:25

                  하루키 두 출세작이 갖는 매력에 심취되어

-하루키의 초기 두 작품을 통해서 누구나 그의 원초적인 작품 세계 속에 깊이 빠져 들고

,무한한 소설적 재미와 소설 미학의 참맛을 만끽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독자를 매료시키는 무라카미 하루키

 

항상 새롭고 기존 문학의 틀에서 벗어난 탈규범적인 스타일의 소설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잘 알다시피 그는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

국내에서도 많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베스트 셀러 작가다. 그의 문체나

이야기 전개에 심취한 열광적인 독자들은 그의 작품이 일본에서 발표되기만 

하면 우리 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길 학수고대한다. 그래서 그의 장편 소설은

물론이고 단편 소설 '수필'여행기 등 대부분의 작품이 번역 출판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어떤 점이 이토록 우리를 매료시키는 걸까?

 그의 소설 속에 녹아 있는 도시형 소설적 요소. 즉 경쾌한 리듬감, 가벼운 터치

사실적 묘사, 윤리와 무관한 감성, 고독이 배어 있는 공허감과 결핍감, 적당한

무관심 등이 고정 관념이나 전통, 습관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려져 있어,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직면하는 현실의 고뇌와 문제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 관계를 포기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려는

,주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하는 하루키 작품 속ㅇ의 등장 인물들의 

감각이 도시적 공간에서 혼자일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신세대의 감각에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일본의 전통 문학과 단절된 지점에서 씌어진

탈일본적인 작품이어서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작품으로 각광을 받으며 데뷔 

 

하루키로 하여금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하게 한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년)는 쉽게 읽히고 읽은 후의 느낌이 상큼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데뷔작은 초기 4부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댄스 댄스 댄스 1'2>)의 제 1탄으로서 리드미컬하게 다음 작품으로

연결시켜 주는 고리 역할을 했다. 

 이 작품은 1970년 8월 8일에 시작하여 8월 26일에 끝나는 18일간의 이야기다.

1970년 여름, 도쿄의 대학에 다니는 스물한 살의 '나'는 방학을 맞아 고향인 항구 거리로

돌아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와 있는 

친구 '쥐'와 맥주를 마시며 J가 경영하는 제이스 바에서 보낸다. '쥐'와 '나'가 공유하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맥주를 계속 마셔대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이 바의 화장실에서 술에 엉망으로 취해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해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된다.  그 이후에 '나'는 새끼손가락이 없는 그녀와 친해져 함꼐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거나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한편 '쥐'도 무거운 고민 거리를 안은 채 시간을 보낸다. '나'와 '그녀' 그리고 '쥐'는 

각자 갈 곳 모르는 고립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무관심할 뿐이다. 어쩌면 적당한 무관심이 배려 

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을 간다며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그녀'는 1주일 후에 나타나 사실은 낙태 수술을 받았다고 털어 놓는다. 그리고 8월이 

끝나 갈 무렵에 '나'는 J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고향을 뒤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한 이후에 가능하면 빨리

다음 작품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좀더 잘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게 된 작품이

씁쓸한 젊은 날을 그린 제2탄<1973년의 핀볼>이다.

 <1973년의 핀볼>은 기둥이 될 만한 스토리가 없다고도 볼 수 있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와는 반대로 스토리 중심이며, 도입부가 꽤 긴 편이다. 

 1973년 5월 '나'는 혼자서 어떤 거리의 역을 찾는다.

 '나오코'로부터 그 역에는 플랫폼을 종단하는 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 개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던 '나오코'는 이미 죽어 비리고 없다. 

즉 이 소설은 '나오코의 죽음=상실' 위에 성립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줄거리를 좀더 살펴보면 ,도쿄에서 친구와 함께 번역 사무실을 경영하고 있는 '나'가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양옆에 쌍둥이 자매가 잠들어 있었다. '나'는 편의상 그녀들에게

'208''209'라고 이름을 붙이고 기묘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한편, 대학을 중퇴한 '나'의 친구 '쥐'는 

7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며 여자 친구를 사귀지만,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쌍둥이 자매와 기묘한 나날을 보내던 '나'는 불현듯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 이라는 

핀볼 기계를 찾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힌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도쿄 근교 냉동 창고에서

핀볼 기계를 찾는데, 그 기계와의 재회는 '나오코'와의 재회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핀볼 기계의

발견은 그대로 새로운 상실 혹은 상실의 확인이었다. 그것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그 무렵에

쌍둥이 자매가 '나'의 집을 나간다. 

 하루키는 무엇을 상실했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단지 상실이라는 상태만을

소설 속에 그려 놓았을 뿐이다. 

 

  하루키의 초기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

 

나는 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하루키는 정말 세계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의 틀을 적용시키며 그의 작품을 이해해야 할까, 그가 우리와 공유하려는

사실감은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마음 설레며 번역 작업에 임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번역을 하는 동안 나는 이 두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간결하고 평이하게 

씌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칫하면 무겁게 다루어질 주제 의식을 가벼운 터치로 그녀 

나간 것이다. 

 역자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 세계를 좀더 확실하게 이해하고픈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의 근본적인 작품 세계를 접한 우리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더욱 친근한 작가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작품은<문학사상사>의 요청으로 2년 전에 번역에 착수하여 탈고했으나,

타사에서 이미 간행된 그 작품들은 웬만큼 독자의 손에 들어 갔을 것으로 판단된 데다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와 <태엽 감는 새 1-4>등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오역(誤譯) 없고 

적절한 해설을 붙인 이 두 작품의 간행을 바라는 소리가 있어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됐다. 

 역자는 한 자 한 구절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 번역게 힘썼으나

,혹여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독자들의 고견을 보내 주기 바란다. 

 

 

                                                                                                 윤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