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공감의 완결편
- 이 작가 일생일대의 거작인 <태엽 감는 새> 의 완역을 끝낸 감회 -
아버지 잃은 세대의 작품 세계에 국경을 초월한 공감대
마침내 <태엽 감는 새>의 번역을 끝내고 완간을 보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으레 그렇듯이 <태엽 감는 새 1~2>는 작년 봄에
일본에서 발표되자마자 베스트 셀러의 톱에 올라 한동안 서점가를 휩쓸었었다.
이 완결편 역시 올 여름이 다 가고 있는 8월 말에 출간되자마자 알본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 열기는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벌써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어 그 동안
1~2권만 읽고 궁금증과 무엇인가 미흡한 느낌을 지녔던 독자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하루키 문학 일생일대의 대작임을 공감케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즐겨 읽는 한국의 독자들은 단순한 독자 수준을
뛰어넘은 마니아 수준이라고들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무엇이
독자를 그토록 매료시키는 것일까?
물론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소설이면서도 일본적인 감각이 희박하다는 점, 도시적인 감각과
세련미를 갖췄다는 점 등을 쉽게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전체에 감도는
공허감과 결핍감이다.
우리는 고도의 경제 성장 덕분에 맞게 된 고도 소비 사회와 점점
강퍅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 물질적, 금전적으로는 만족스러우면서도
항상 뭔가가 부족한 듯한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루키는 모든 것의
근원이요, 힘과 규범의 상징인 아버지를 상실한 그와 같은 젊은 세대들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꾸준히 작품 활동의 중심으로 삼아 왔다.
이 <태엽 감는 새>는 그의 문학을 중간 결산하는 거작으로서 이미 정평이
내려졌다. 작가 자신이 아버지를 잃은 세대로서 아버지를 잃은 세대를 위해서
씌어진 이 소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화적 공통점이 많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루키의 역량이 한껏 발휘된 작품
<태엽 감는 새>는 1~2권과 마찬가지로 완결편인 3~4권에서도 작중 인물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현재와 과거,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주인공 오카다 도루가 어느 날 갑자기 행방을 감춘 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아내
구미코를 찾기 위해 애쓰는 현재의 이야기와, 그에게 경제적인 도움의 손길을 뻗친
아카사카 너트메그가 어린 시절 만주에서 헤어진 아버지 - 이사람의 얼굴에도 반점이
있다- 가 겪는 전쟁 이야기, 그리고 마미야 중위가 겪은 시베리아에서의 포로 시절
이야기가 교묘하게 서로 교차하며 인간의 삶과 진실을 깊숙히 그리고 치밀하게
검증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의미와 상징을 지닌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오컬트 요법을 이용해 고위직
인물들을 상대하는 아카사카 너트메그. 어느날 갑자기 입을 닫아 버린 아카사카 너트메그의
아들 시나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신징의 동물원에 수의사로 근무했던 얼굴에 반점이
있는 너트메그의 아버지,노몬한 전쟁에서 살아 남아 시베리아까지 포로로 끌려간
마미야 중위, 그리고 와타야 노보루의 충실함 심부름꾼 우시카와가 그들이다.
그 가운데 오카다 도루와 와타야 노보루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성격의 두 인물이다.
오카다 도루는 1~2권에서 이미 설명되었던 것처럼 법대를 나왔지만 그저 조그만 법률
사무소에 다니다가 그나마도 실직한 상태의 남자다. 그러나 와타야 노보루는 그의
이름 노보루( 昇. (오를 승), 올라간다는 뜻)에서도 의미하듯 상승 지향의 인물이다.
그는 오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 사회,특히 한국과 일본에 공통되는
심각한 문제인 입시 전쟁 시대, 경쟁 시대의 한 극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오카다 도루는 현실 생활에서도 뒤처져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인물들보다 더 중요한 상징을 지니는 두 사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이 말라
버린 우물과 태엽 감는 새다.
주인공 오카다 도루는 불가해한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을 떄, 물이 말라 버린 그 우물에
들어가 상념에 빠지거나 자신의 주위에 일어난 사태를 되짚어 보거나 오컬트한 초현실
공간을 여행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젤리 같은 벽을 나가 208호실 여자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인 형태로 나오는 것이 바로 태엽 감는 새다. 태엽 감는 새는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인물은 시나몬, 신징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처치한
병사 등이지만, 이들 앞에도 태엽 감는 새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 이 태엽 감는 새의 태엽은 과연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번역을 하면서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그리고 번역을 끝내고 나름대로 결론
지은 것은, 태엽이란 이 세계와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 즉 어떤 규범
,관념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작가는 곳곳에서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란 없으며 선택의
여지 역시 있을 수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이 우연의 일치든 아니든 간에, 시나몬의 이야기에서는 `태엽 감는 새` 라는 존재가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인간에게만 들리는 그 새소리에 이끌려
피할 수 없는 파멸의 길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수의사가 늘 느꼈던 것처럼 인간의 자유
의지 따위는 무력했다. 그들은 등의 태엽이 감긴 인형이 테이블에 놓여지듯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행위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주인공 오카다 도루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각각 어딘가에서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태엽을 감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태엽을 감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자신을 `태엽 감는 새`로
비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은 우물 밑바닥이 더 친숙하다.
탄탄한 구성과 세상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에 감탄
이 책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엄청난 작가적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거침없이 이어지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이야기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들은 사실은
커다란 하나의 퍼즐 게임, 낱말 맞추기와 같은 것이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너트메그의 아버지는 현재의 `나` 오카다 도루에 이어지는 인물이며
, 마미야 중위가 들어갔던 우물 역시 현재의 `나`가 들어가는 우물에 이어진다.
그리고 신징 동물원에서 중국인을 죽이는 데 쓰였던 야구방망이는 현재의 `나`가 지니고
있는 야구방망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번역을 해나가면서 나는 아이들이 짜맞추며 노는 그림 퍼즐과 같은 탄탄한 구성과
소재의 연관성 , 인물 간의 상관 관계에 놀라며, 새삼스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일본과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를 정신적으로
이끌어 가는 사상을 상실한 현대 세계의 혼란을 작품에 끌어들여 보다 인간의
진실과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시대를 암시하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가능한 한 원작에 충실하도록 애썼으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자체가 간혹은 일본인들도 이해하기 힘든 요소가 있어 이런 부분에서는 의역을 했고
<문학사상사> 편집부와 의논하여 표지의 양쪽 날개에 도움말을 부쳤다. 그리고 단어나
문장을 강조하기 위한 방점이 많으나 여기서는 홑따옴표로 표시했음을 밝혀 둔다.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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