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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원 번역가 후기 모음

1973년의 핀볼 -윤성원-

by 아오야마 2020. 3. 28.

 

전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한 하루키의 작품을 다시 만난 기쁨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난 4월 1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 가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시리즈를 

몰아내고 서점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는 기사를 실었다. 

뒤어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가 

독일에서  연극으로 각색되어, 오는 6월 5일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4월 24일에는 일본의 교도통신이 오스트리아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해변의 카프카>가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동양의 순문학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문화 선진국이라는 유럽에서도

명실 공히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러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이 출판사 판매 1위에 오르고, 러시아 최대 출판사에서

하루키 전집 출판을 위한 교섭을 진행시키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중국에서도 일찍이 <상실의 시대>와 <양을 쫓는 모험> 및 단편집

등이 발간되었고 , 최근에는 <하루키 전집>이 출판되어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제 하루키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최초의 동양인 작가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상실의 시대>로 백만 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하루키가 이렇듯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키의 작품이 동양에서뿐만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등에서까지

폭넓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우선, 자본주의와 산업의 수레바퀴 밑에서

'개인의 고립' 때문에 고민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등장인물이 

끌어안고 있는 내면적인 고립감에 공감'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서구에서는 서구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세련된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하루키의 작품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동양의 신세대들에게는 서구의 음악과 요리 등 하루키 작품 내에서

사용되는 장치들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 공동 매개채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나오코의 흔적을 처음 발견하는 기쁨

 

이 작품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같은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하루키의 작가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 토루와 가슴아픈 사랑을 나누다가

결국 죽음을 택함으로써, 사라하는 이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가슴 깊이 깨닫게 해준 나오코의 흔적을 처음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1973년 5월, '나'는 혼자서 어떤 거리의 역을 찾는다. '나오코'로부터

그 역에 플랫폼을 종단하는 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개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던 '나오코'는 이미 죽고 없다. 

즉 이 소설은 '나오코의 죽음=상실' 이라는 도식을 처음 보여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를 좀 더 살펴보면, 도쿄에서 친구와 함께 번역 사무실을 경영하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다가, 양옆에 쌍둥이 자매가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그들과 기묘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한편 대학을 중퇴한 '나'의 친구 '쥐'는 7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며 여자 친구를 사귀지만 ,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처음엔 여자 친구를, 나중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쌍둥이 자매와 기묘한 나날을 보내던 '나'는 불현듯 '스리플리퍼 스페이스십'

이라는 핀볼 기계를 찾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힌다.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도쿄 근교 냉동 창고에서 핀볼 기계를 찾는데, 그 기계와 '나'의 재회

장면은 마치 나오코와 '나'의 재회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핀볼 기계의

발견은 새로운 상실 혹은 상실의 확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상징이라도 하듯 그 무렵 쌍둥이 자매는 '나'의 집을 나간다. 

 

  하루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전적 소설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언제나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독특한 상상력과 표현력, 허를 찌르는 비유,

그리고 작품마다 배어 있는 서정적이면서도 조금은 우울한 상실의 느낌 

때문이었다. 

 <1973년 핀볼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주는 작품이다.

어둡고 쓸쓸했던 하루키 자신의 젊은 날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 속 '나'와 '쥐' 의 모습을 통해 하루키라는 사람의 실제 모습을

조금쯤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물론 하루키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가 갖고 있는 생각,

특히 상실이라는 느낌을 소설 속에 그녀놓았을 뿐이다. 

 <1973년의 핀볼> 또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마찬가지로 간결하고 평이한

문체로 써졌다.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주제를 가벼우면서도 의미 있는

문체로 다루는 하루키만의 작가적 재능이 한껏 펼쳐진 작품이다. 

이렇듯 가벼운 문장과 그 안의 깊은 의미를 한 가지도 빠짐없이 옮기기 

위해 한 자 한자 번역하면서 성심을 다했다. 하지만 혹여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독자들의 고견을 보내주기 바란다.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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