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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원 번역가 후기 모음

먼 북소리 -윤성원-

by 아오야마 2020. 3. 26.

 

 

                                  읽는 기쁨 번역하는 즐거움 

   

<먼 북소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 가을에서 1989년 가을까지 3년에 걸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쓴 에세이 또는 여행기이다. 

하루키는 이 기간 동안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를 완성했으며, 그외 번역 작품도 여러 권 발표했다. 

 

하루키는 거의 전 작품이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된될 정도로 이제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으며, 일본의 권위 있는 일간지<아사히 신문>

에서 실시한 "지난 1천 년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인"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생존하는

문인 가운데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래, 24년 동안 10편의 장편과 8편의 단편집,

그 외 약 35편의 에세이, 기행집, 대담집 등을 발표했으며, 일본 내에서는 약 30여

권의 번역서를 발표한 번역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루키는 우리나라에서도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고,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번역되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의 주옥같은 번역서들은 일본어가 가능한 독자 외에는 접할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루키의 다른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먼 북소리도>도 역시 하루키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유감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거점으로 

하여, 유럽의 많은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며 느낀 감상을 여행자의 시점에서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사는 생활인으로서의 시점에서 스케치하듯 일기를 써 내려가듯 기록한

글이다. 

 작가 자신이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에 발표한 작품이라서,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시작하여 비교적 최근 작품인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나 <해변의 카프카>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연대별로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오랜만에, 한창 무르익던 젊은 

날의 하루키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의 머리말에서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아주 갸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라며 자신이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매일 일정량의 글을 쓰고 일정 시간 달리기를 하고, 한가할 때는 음악을 

듣는 등 물리적으로는 그다지 힘겨워 보이지 않아서, 작가들이 흔히 말하는 뼈를 깎는 듯한

고통과는 거리가 먼,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술술 글이 써지는 천재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하루키였으나,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그의 내면세계까지 엿볼 수 있어 여간 소중한 글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장편소설을 쓸 때면 항상 머릿속 어디에선가 죽음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라고 줄곧

생각한다. 적어도 이 소설을 무사히 끝마칠 때까지는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을 

완성하지 않은 채 도중에 죽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분하다. 어쩌면 

이것은 문학사에 남을 훌륭한 작품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나 자신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소설을 완성시키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엄밀하게는 내 인생이

아닌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주방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붓고 전기 히터

스위치를 켠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다.그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원컨대 저를 조금만 더 살려주십시오. 저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하고"

 

나는 이 작품을 번역하는 동안 내내, 그의 말처럼 누구에게 하는 기도인지 대상도 불분명한

기도를 새벽마다 반복하는 하루키의 절박한 모습을 떠올리고, 어떻게 해야 하루키 작품의 멋과 

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번역을 할 수 있을지 고심하며, 나 역시 거의 기도하는 심정으로 

번역을 진행했다. 

 원서의 양이 500페이지나 되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어서 다소 읽기에 부담스럽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처음 책장을 넘기고 나면 전혀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밝고 유머가 넘치는 내용이라 , 시종 미소 띤 얼굴로 킥킥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건 예사이고 군데군데 자기도 모르게 폭소가 터져 나오게 되는 부분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어 , 일정 부분이 지나면 폭소가 터질 때가 됐는데, 라며 기대까지 하게 된다

 초단편소설 <밤의 거미원숭이>에서도 하루키는 어느 누구도 따를수 없는 기발한 상상력과

넘치는 유머로 독자에게 시종 웃음을 안겨 주었는데 <밤의 거미원숭이>가 주로 초현실적인

내용들인 데 비해 <먼 북소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면서도 풍자만화를 읽는 듯

한 느낌이다. <해변의 카프카> 처럼 무거운 주제의 소설로 처음 하루키의 작품을 접한

독자들은 , 같은 저자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가도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작은 일들에 대한 감상은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공연히 뿌듯해지며 그와의 거리감이

단숨에 사라지는 뜻하지 않은 덤이 붙는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을 하면서 하루키 특유의 톡톡 뒤는 간결한 문체의 맛을 그대로 살리려 노력했으며

,장면 장면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다소 거친 듯한 표현들도 여과 없이 그대로

살렸다. 

 

 <먼 북소리>를 손에서 내려놓은 지금.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라는 하루키의 글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 귓가에는 어디선가 둥둥거리는 북소리가, 나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도록

부추기는 듯한 북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감히 하루키처럼 뛰어난 글을 

써야겠다는 분수에 넘치는 욕심은 없지만, 하루키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리스의 

하루키 섬으로 훌쩍 떠나<먼 북소리>의 여운에 푹 잠겨 보고 싶다. 

 

                                                                                                   윤성원

 

 

 

 

과연 이 사람은 그 후에 하루키(halki) 섬에 다녀왔을까..궁금하네

 

  실은 나도 <먼 북소리>를 읽고 나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온 그리스 전도를 사서 벽에 

붙여 놓은 적이 있는데..

깨알 같은 이름들이 적힌 그 수 많은 섬들 중에서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단연코 스펫체스<스펫차이?> 였다.

그 섬에는 하루키말고도 다른 작가의 이야기도 있으니까...

부라니 곶을 찾아가 보고 싶었는지도.. 언젠가 내게도 기회가 생기겠지.

 

  그 외에도 역자가 언급한 말마따나 하루키가 번역한 번역서는 무척 아쉽다..그건 내가 지금 일본어를 공부한다고 해도

내용을 이해할지언정 느낌까지 파악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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